예술은 시간을 담는 작업이다. 예술가는 시간의 한계 안에서 자신이 마주한 진리를 드러내고, 시간의 바깥에서 역사와 대화하며, 시간의 변화 가운데 자연의 얼굴을 비추려 시도한다. 그렇게 예술가는 '시간의 얼굴'을 끊임없이 포착하고, 창작의 의지를 담아 작품을 창조한다.
예술가는 공간의 형태를 다듬어 시간의 얼굴을 만들어낸다. 시간을 담은 얼굴은 공간이면서 시간, 표면이자 내면이다. 형식으로 실질을 담는다. 본질을 드러내면서 쉽게 감춘다. 변화하면서 또 그대로다. 흐르면서 동시에 멈춰있다. 의식을 지향하면서 무의식을 드러낸다. 의지를 담되 욕망을 가로지른다.
50년 지난한 예술가의 운명을 짊어지고, 강종열 작가는 고향 여수와 동티모르 절망의 공간에서 희망과 자연의 얼굴을 마주했다. 그는 여순 비극의 역사현장에서 역사와 시간의 얼굴을 만나기 위해 애썼다. 예술가는 기꺼이 자신의 삶을 내어주었고, 시간은 그에게 작품의 탄생을 허락했다(관련 기사: 초청국 대통령 만나 "양심대로 그리겠다" 하자, 돌아온 답https://omn.kr/2cu3g )
동백화가 강종열 초대전이 전남도립미술관에서 3월 28일부터 5월 25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고향 여수와 섬 작업과 동백 연작, 동티모르의 역사와 한 인간의 생애사, 여순항쟁을 다룬 목탄화와 회화 작품들을 전시한다.
희망의 얼굴, 태양이 밝게 빛나는 이유
티모르로로사에(Timór-Lorosa'e). 동티모르의 정식 국가명이다. 강종열 작가는 2004년 아름다운 '해 뜨는 동쪽의 티모르 섬'과 인연을 맺는다. 같은 해 한국을 방문한 동티모르 사나나 구스마오 대통령과의 만남을 계기로 동티모르의 아픈 역사와 내전에 지친 사람들의 모습을 화폭에 담을 수 있었다.
티모르 섬은 붉은 태양 아래 야자수와 맹그로브나무가 빽빽한 풍경을 펼쳐보이고, 원시 바다와 절대 자연의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동티모르는 작가가 본대로 '너무 아름다워 오히려 슬픈 땅'이었으며, 산 자의 고통은 죽은 자의 운명보다 무거운 곳이었다.
포르투갈 식민지배 400년, 인도네시아 강점 25년, 독립전쟁과 내전의 슬픈 역사가 섬 전체를 둘러싸고 있었다. '불안한 미래'만이 도시와 시민들을 기다리고 있는듯 했다.
누구 하나 희망을 말해줄 이 없는 섬의 현실을 강종열은 "회한에 물든 먼 바다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망막함은 바다보다 깊어 보이며, 또 닥쳐올지 모르는 어둠에 소녀의 눈 또한 질려있다"고 적었다(전시 도록 참고).
희망은 탄생의 순간 다시 시작된다. 찬란한 바다와 붉은 태양의 섬에서 인간 생명과 가족의 안식은 여전히 따뜻했다. 붉은 태양의 빛 한 가운데 '이다'가 태어나고, 어머니와 형의 품 안에서 성장해 간다.
"새로운 탄생은 희망입니다. 그들은 희망의 빛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납니다. 태양이 매일 더욱 밝게 빛나는 이유입니다"라며, 한 인간과 가족의 생애사를 지켜보는 가운데 강종열은 절망의 울타리에서 한 줄기 희망의 얼굴을 만나게 된다.
조국의 부재는 모든 이들의 얼굴을 추방한다. 추방당한 이들의 탈출구는 오직 기도 밖에 없다. 인도네시아 군에 의해 살해된 독립파 청년 '세바스찬 고메스'의 무덤에 꽃을 놓는 관습을 지키는 날에 더 이상 압제에 신음치 말고 독립을 하자는 외침이 산타크루즈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