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백발이 성성한 70·80대 노인들이 충북도청 정문에 늘어섰다. 야외 기자회견장에 펼쳐진 현수막에는 "충청북도는 유해발굴 실시하라"고 적혀 있었다. 마이크를 쥔 이제관 한국전쟁 충북연합 회장은 "유해 시굴을 통해 아곡리 사건이 밝혀졌다. 이제라도 충청북도는 유해발굴을 전면 실시하라!"고 목청을 높였다.
유골함 들고 도지사실로
기자회견에는 제1기 진실화해위원회 유해발굴 팀장이자 한양대 교수 노용석 박사가 참여했다. 그는 2014년 6월 23일 보은군 내북면 아곡리에서의 유해 시굴 결과를 설명하면서 지방자치단체가 유해발굴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기자회견 후 필자는 유골함을 들고 이시종 충북도지사를 면담하기 위해 도청 현관으로 갔다.
도청 현관에는 충북도청 직원과 청원경찰들이 유족들을 막아섰다. 한국전쟁 충북연합은 아곡리 유해 시굴 결과를 토대로 그해 8월 18일 충청북도에 충북 도내 4곳에 대한 유해 발굴과 관련해 도지사 면담을 신청했다. 하지만 도지사는 묵묵부답이었다. 면담 요청 2개월 뒤인 2014년 10월 23일 유족들이 도청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도지사 면담을 시도헸다.
하지만 도청 직원들과 청원경찰들에게 유족들은 '늙은 데모꾼(?)'에 불과했다. 스크럼을 짠 이들을 뚫기는 만만치 않았다. 한 여성 유족은 직원들에 의해 사지가 들려 끌려 나왔다. 고성이 오가고 복받친 울음이 터졌다. 설왕설래 끝에 대표자 3명이 도지사실로 들어갔다.
하지만 팥소 없는 찐빵이라 했던가! 집무실에는 도지사가 없었다. 필자는 유골함을 열고 "이 뼈가 6.25 때 대한민국 군경의 총부리에 죽임을 당한 이들의 뼈입니다"라고 말했다. 묵묵히 듣던 비서실장으로부터 "도지사에게 유족들의 의견을 전달하겠다"는 답을 듣고 도지사실을 나섰다.
유족들이 속울음을 삼킨 채 도지사실에서 물러난 후 아곡리 유해발굴이 바로 이뤄지지는 않았다. 항의 기자회견을 한 지 5년 만에, 사건 발발 69년 만인 2019년에서야 발굴이 이뤄졌다. 아곡리 사건은 청주 보도연맹원 약 150명이 보은군 내북면 아곡리까지 끌려가서 집단학살당한 사건이었다.
개울에 두개골이
제1기 진실화해위원회는 출범 1년 만인 2006년 12월 '유해매장지 조사사업'에 착수했다. 전국에 유해 매장지 168곳에 대한 조사였다. 나는 충청북도를 맡아 청원 분터골, 옥녀봉, 오창창고를 비롯해 단양군부터 영동군까지의 매장지를 조사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