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이후 4개월간 이어진 탄핵 반대 집회에서는 중국 혐오 정서가 새롭게 대두됐다. 8년 전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 때까지만 해도 관성적으로 등장한 '종북', '빨갱이' 대신 '중국'이라는 새로운 '적'이 세워졌다. 집회 현장에선 기자나 경찰에게 다가가 "중국인 아니냐"며 한국말을 해보라고 따져 드는 시위대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이들은 중국이 한국의 정치권과 헌법재판소를 모두 장악해 배후에서 조종하고, 부정 선거를 일으키고 있다는 음모론을 폈다.
아스팔트 보수에서 떠오른 중국 혐오는 무엇을 의미할까? 이들은 왜 갑자기 중국이라는 새로운 적을 만들어냈을까? <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진실>(2018), (2021), <러시아는 무엇이 되려 하는가>(2023)의 저자로 서울대학교 아시아언어문명학부 대학원 석사 과정 중인 임명묵(31) 작가는 혐중 정서 발현의 근저에 "공동체가 쇠락하고 있다는 감각이 있다"고 설명했다. "바닥을 찍은 출산율, 세계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답보 상태에 빠진 산업 등 삐걱거리기 시작한 한국 시스템 자체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적'을 찾고 만악의 근원으로 모는 혐중 우파 포퓰리즘이 성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1980년대 중반부터 지속돼온 탈냉전 세계화 체제의 승자라고 할 수 있는 '서울 중산층 정상가족'이 아닌, 현 체제에서 소외되고 배제되고 자리잡지 못한 이들에 의해 우파 포퓰리즘이 힘을 얻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세계화 체제를 이끌어온 미국·서유럽의 자유주의 진영 역시 낙오된 자들의 불만을 관리하지 못해 현재 우파 포퓰리즘의 파도에 휩쓸리고 있다"라며 "기존 체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정치적 기획을 제시해 압력 밥솥의 증기를 빼내지 못한다면, 포퓰리즘이 폭력을 동반하는 파시즘으로 악화될 위험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임 작가를 지난 10일 경기도 광명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무너지는 미국 중심 '세계화 체제'… 냉전 시대 '소련·반공'에서 '중국'으로"
- 12.3 계엄과 윤석열 탄핵을 거치면서 중국 혐오가 전면에 등장했다.
"한국에 머물지 않고 세계적 차원으로 시야를 넓혀볼 필요가 있다. 지금은 격변기다. 2016년 탄핵 때와 비교해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중국과 미국의 위상 교차다. 8년 전만 해도 중국의 성장이 지속 가능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많은 상황이었다. 한국에선 중국도 어느 시점에 도달하면 IMF 같은 위기를 겪으리란 막연한 예측과 함께 과거 '후진국' 중국을 상정한 특유의 멸시가 공존했다. 그러나 중국은 예상을 깨고 진화했다. 딥시크와 BYD 같은 최첨단 기업을 만들어 세계를 놀라게 했고, 미국 패권의 탈냉전 자유주의 세계화 질서를 위협할 국가로 올라섰다. 최근의 미중 관세 전쟁은 이 역학 구도 변화를 잘 드러낸다.
사실 그간 한국은 미국을 위시한 세계화 자유주의 체제의 가장 큰 수혜자 중 하나였다. 한국은 1980년대 중반 이후 공고해진 탈냉전 세계화와 자유 무역의 흐름에 탑승해 세계 시장에 선박·자동차 등을 팔아 막대한 부를 쌓았고, 2010년대 선진국 대열에 안착했다. 동시에 한국은 광활한 중국 시장을 가까이 둬 이득을 본 나라이기도 했다. 2008년 금융위기 때 한국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피해가 덜했는데, 이는 중국 덕분이었다. 당시만 해도 중국은 미국 중심의 세계무역 질서의 충실한 참가자였기 때문에 한국 경제는 중국 시장에 기대 금융위기의 충격을 완화할 수 있었다. 한국 입장에서 지난 30년은 미국과 중국 모두에게서 과실을 따먹을 수 있는 호시절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황금기는 끝나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한국은 언제라도 선택을 강요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처했다. 도리어 중국은 조선·자동차 등 주요 산업에서 한국을 위협하고 있고, AI 같은 새로운 분야에선 이미 압도적으로 앞서가고 있다. 한국은 정체된 반면 중국이 급부상하자, 기회 요인이었던 중국과 근접한 지정학적 위치는 안보 긴장의 위협 요인이 됐다. 이같은 전환기의 불안은 침체의 책임을 중국에 뒤집어 씌우는 우파 포퓰리즘으로 발전했다."
- 세계 질서 변화가 한국의 극우 집회에 영향을 미쳤다는 건가.
"아스팔트 우파의 태극기 집회를 보면 모두가 한 손에는 태극기, 다른 한 손에는 성조기를 들고 있다. 태극기 집회가 아니라 태극기·성조기 집회다. 태극기·성조기 집회의 판을 깔고 있는 세력 역시 미국·서구 문화로부터 유래한 개신교 단체들이다. 그만큼 미국과의 일체감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오늘의 중국에 대한 혐오는 과거 소련이나 북한에 가졌던 적대감의 구조와 흡사하다. 냉전적 구도에서 '소련'의 위치에 '중국'을 대입하면 그대로 통한다.
다만, 현 상황을 '신냉전'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확한 명명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미·중이 각자의 이념을 갖고 지구적 세계관을 통일하겠다고 싸우는 건 아니기 때문에 '냉전'은 아니라는 얘기다. 과거 미소 냉전 때만큼 강력한 양대 국가가 재출현한 것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