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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좌제 성폭력까지 있었는데... 국가는 왜 침묵하는가
2025-04-17 16:46:47
과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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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소식에 다시 떠오른 그날

2024년 12⸱3 내란 사태 직후, 많은 이들이 '내란성 수면장애', '내란성 위염'을 앓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1980년 5⸱18을 겪은 국가폭력 피해자들과 전남 지역 주민들은 계엄 트라우마에 시달렸다고 한다. 내가 아는 한 여성 피해자도 계엄 선포 소식을 들은 직후, 과거에 겪었던 일이 떠올라 온몸이 덜덜 떨렸다고 했다. 그 뒤로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되기까지 넉 달 동안, PTSD가 재발해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심장이 아팠다. 이분은 한국전쟁 때 아버지가 형무소에서 학살당했다는 이유로 박정희 정권 시절 온 가족이 사찰 대상이 되었고, 본인은 경찰에게 성폭력 피해를 겪었던 여성이다. 이번 사태로 PTSD가 재발한 국가폭력 피해자가 많았겠지만, 이분은 아직도 국가나 사회에 피해 사실을 밝히지 못 하고 있기에, 그 고통은 더 깊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2024년 12월 3일에 계엄이 선포된 직후 일부 커뮤니티에는 "전시 래이프(rape, 성폭행)를 합법화하자"라는 끔찍한 댓글이 달린 적 있다. '전시 성폭력'이란 내전, 국가 간 전쟁, 군사 점령 기간 중 무장세력이 민간인에게 자행한 성폭력을 말한다. 지금도 지구상 곳곳에 전쟁과 분쟁 지역에서는 전시 성폭력이 일어나고 있다. 만약 12.3 내란이 성공해 인위적으로 준전시상태가 되거나 전시상태가 됐다면, 한국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보장이 있을까?

'폭도 각시'라 불린 여성들, 그들에게 가해진 성폭력

나는 과거사 국가폭력을 연구하면서 한국 현대사 속 전시 성폭력 사례들을 접했다. 제주4⸱3, 여순항쟁부터 한국전쟁기까지 이어진 군경의 토벌작전 현장에서는 여성들이 집단 성폭행당하거나 생식기를 공격당하며 학살당한 사례는 셀 수 없이 많았다. 제주에서는 남편이 집에 없는 여성들은 "폭도 각시"라고 불러내어 성폭행했으며, 임신부의 배 위에 나무토막을 올려놓고 널뛰기를 하며 고문한 사례도 있었다. 호남에서는 임신부를 학살한 뒤 태아의 시신까지 훼손한 사건들도 있었다. 또한, 국민보도연맹원이나 부역 혐의자를 구금했던 공간에서도 여성을 집단 성폭행하거나 성고문 했던 사건이 있었다. 경찰이나 서북청년단원이 지역 여성과 강제 결혼한 사례도 다수 있었으며, 수복 후 국군 제11사단의 주둔지에서 국군 고위 간부에게 지역 주민이 '성 상납'을 했다는 증언도 있다.

이러한 성폭력은 군인들이 전투 후 보복을 위해, 또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저지른 경우도 있었고, 민가에 들어가 식량 조달을 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경우도 있다. 부역 혐의자 가족을 응징하고 재생산을 막기 위해 성폭력을 자행하기도 했다. 빨치산 토벌전이 있었던 지역에서는 빨치산 보급기지를 차단하겠다는 이유로 마을을 불태우고, 승리의 징표처럼 여성들을 성폭행하거나 학살하고 신체를 훼손하는 폭력도 가했다. 이 경우에는 여성과 아이도 '적 공동체'의 일부로 간주되었기에, 전시 성폭력은 전쟁의 부수적 피해가 아니라 전쟁 전략의 일환이었다고 봐야 한다. 1951년부터 정부 주도로 한국군·미군을 대상으로 '위안부' 제도가 운영되기도 했다. 국군 위안부는 1954년에 공식적으로 폐지됐지만, 미군 '위안부'는 전후 수십 년 동안 정부가 일종의 '포주'가 되어 관리했다. 이처럼 한국전쟁기에 남성은 병사나 청년단으로 동원되어 살인의 도구가 되었으며, 여성은 곳곳에서 위안의 도구로 동원되었다.

전후로 이어진 성폭력, '벙어리새'로 살아야 했던 여성들


냉전반공체제에서 '빨갱이' 또는 그 가족으로 분류된 사람들에 대한 폭력은 전후에도 계속되었다. 이들은 1980년대 초까지 연좌제 적용을 받아 공안 당국의 감시와 사찰을 받았고, 취업·출국이 제한되며 지역사회에서도 배제되었다. 마치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 아래의 유대인처럼, 이들은 수십 년간 비가시적인 '게토' 속에서 살아야 했다.

그 가운데 특히 한국전쟁기의 '처형자', '행방불명자', '월북자'의 가족 여성들은 연좌제 성폭력의 대상이 되었다. 담당 경찰이 주기적으로 성폭행한 경우, 남편을 간첩으로 몰고 간 뒤 아내를 협박하며 성폭행한 경우도 있다. 국민보도연맹원 아내가 경찰에게 강제 임신을 당한 후 살던 마을을 떠나야 했던 사례도 있다. 어떤 여성은 아버지 또래의 대한청년단 간부에게 강제로 시집 가 첩살이, 식모살이를 해야 했고, 아들을 낳았으나 호적에 자신의 앞으로 올릴 수 없어 평생 그것이 가장 사무친 한이라고도 하였다.

우선 사찰·관리 대상이던 일부 여성이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자신의 담당 경찰에게 성폭행당한 사례가 있다. 그리고 남편을 간첩으로 몰며 공안기관으로 끌고 간 뒤, 아내에게 남편의 신변 안전 문제로 위협하며 경찰이 성폭행을 한 사례가 있다. 전쟁 때 국민보도연맹원들이 학살된 뒤, 그들의 아내 여러 명이 담당 경찰에게 성폭행을 당한 사례도 있다. 이 사건으로 한 여성은 강제 임신을 하고 시가에서 쫓겨나 살던 마을을 떠나야 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을 거치며 시국 사건이나 간첩 조작 사건에서도 여성 피의자나 남성 피의자의 가족 여성들이 성폭행당했다. 5⸱18 당시 계엄군의 성폭력도 있었고, 미군 '위안부' 역시 국가가 제도화한 성폭력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 피해자들은 현재 고령에 이르러 여러 지병을 앓고 있다. 성폭행 후유증과 당시 가해진 신체적 폭력의 여파로 불임 등 만성 질환을 얻은 경우도 있다. 트라우마가 신체화되어 각종 증상으로 이어진 사례도 많다. 아직도 과거의 사건 때문에 악몽과 불면에 시달리는 생존자가 있고, 매년 특정 시기마다 트라우마성 발진을 겪으며 고통받는 이도 있다. 어머니와 함께 경찰에게 성폭행당한 한 생존자는, 밤마다 어머니가 이를 갈며 고통스러워하던 소리가 환청처럼 들린다고 증언했다.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한 생존자도 있고, 오랜 우울증 끝에 세상을 등진 피해자도 있다. 그들이 겪는 트라우마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도 2차 가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피해를 공개적으로 말하지 못한다. <벙어리새>(류춘도 지음)라는 책 제목처럼,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조차 이 고통을 숨긴 채 수십 년을 마음에 감옥을 담고 살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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