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나의 최애 요리 방송 프로그램에 원로 개그맨 부부가 나오는 편을 흥미진진하게 봤다. 특히 시선을 끌었던 건 아내 쪽이 스테이크를 먹는 장면이었는데, 부드럽게 갈아서 구운 살치살 스테이크는 쉽게 부스러져 포크로 찍어 먹기가 어려웠다.
옆에서 보던 남편이 숟가락으로 떠먹으라고 조언하는데 아내는 정색하며 이를 거절한다. 어떻게 양식을 숟가락으로 먹냐며. 품위 있게 먹어야 한다면서 그녀는 끝내 나이프와 포크를 써서 음식을 먹는다. 그러면서 그녀는 말했다. "나는 이런 인생을 살고 싶었어요."
별스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요즘이야 동네 분식집만 가도 저렴한 가격에 왕돈가스를 시켜 먹을 수 있지만, 내 어린 시절만 해도 이른바 '칼질'은 쉽게 할 수 없는 대단한 사치였다. 외식이라고 해야 짜장면이 전부였고, 고기 구경은 한 달에 한 번도 어려웠던 그때, 양식을 먹는다는 건 정말 특별한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숟가락 젓가락으로 된장찌개와 김치를 먹는 게 평범한 일상을 상징했다면 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카펫이 깔린 경양식집에서 웨이터의 정중한 서비스를 받으며 먹는 양식의 세계는 얼마나 멋졌던가. 그건 정말이지 몇 년에 한 번, 그야말로 큰 경사가 있을 때나 가능했던 호사였다.
지금 생각하면 경양식집 메뉴라는 게 대단한 음식도 아니었고, 그래봐야 돈가스 아님 비후가스 정도일 뿐이었지만 나이프와 포크를 어떻게 쓰는지도 몰랐던 당시의 어린이에게는 모든 게 신세계였다. 뭣보다 웨이터가 이렇게 물어볼 때가 제일 신기했다. "빵으로 드시겠습니까. 아니면 밥으로 드릴까요?" 아무거나 주셔도 되고, 둘 다 먹고 싶기도 해서 머뭇거리던 그때의 설렘이 지금은 참 그립기도 하다.
그러니 칼로 음식을 썰어 포크로 먹는다는 행위는 단순히 서양 음식으로 한 끼를 때운다는 개념은 아닌 거다. 일상의 고단함과 남루함을 잠시 떠나서 레드 카펫이 깔린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기분이었을 테고, 수저를 잠시 내려놓고 받아 든 포크와 나이프는 그리로 들어가는 열쇠 같은 게 아니었을까.
최소한 지금보다는 넉넉하지 않았던 시절을 살아본 사람들은 그런 정서를 이해할 거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우리의 개그우먼도 최고의 셰프가 만들어 준 완벽한 스테이크를 숟가락으로 먹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스테이크로 혼밥하기
방송의 잔상이 남아서였을까, 오늘은 칼질이 하고 싶어졌다. 돈가스라도 먹을까. 아니 그런데 그건 너무 평범하잖아. 언제부터인가 돈가스는 체급이 너무 내려가서 정말 일상적인 음식이 되어버렸다. 물론 지금도 너무 맛있긴 하지만, 특별함이라는 요소가 완전히 사라져 버린 분식집 돈가스를 먹노라면 어린 시절의 두근거림이 떠올라 가끔은 복잡한 심정이 된다. 역시 같은 칼질이라도 스테이크가 한 수 위다. 그래, 스테이크를 먹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