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한복판에서 도로가 갑자기 푹 꺼지는 장면을 목격한다면 누구든 등골이 서늘해질 것입니다. 최근 서울 강동구 등지에서 발생한 대형 땅 꺼짐(지반침하) 사고들은 이러한 공포를 현실로 만들고 있습니다. 사고가 날 때마다 흔히들 "노후 하수관이 터져서"라고 원인을 짐작하곤 합니다. 그러나 도시 땅이 마치 슬러시처럼 무너지는 진짜 원인은 따로 있습니다. 우리 발밑 지반을 구성하는 흙과 물의 균형이 깨졌기 때문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컵 속 슬러시와 빨대 그리고 말라버린 왕실 우물의 비유를 통해 도시 지반침하의 실제 원인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지속가능한 해법과 정책 방향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슬러시 컵과 도시 지반의 비밀
무더운 여름에 마시는 슬러시 음료를 떠올려봅시다. 컵에 가득 담긴 슬러시는 얼음 알갱이와 시럽이 섞여 있습니다. 겉보기엔 단단해 보여도, 빨대로 바닥의 녹은 부분을 쭉 빨아들이면 위에 쌓인 얼음 덩어리가 한순간에 푹 꺼져내립니다. 왜 그럴까요? 아래쪽 액체가 사라지면 위쪽 얼음 입자들을 떠받치던 안정성이 무너져 내리기 때문입니다.
도시의 지반도 이와 비슷합니다. 흙알맹이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공간이 있고, 그 공간을 지하수가 메우며 압력을 견뎌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하 깊은 곳에서 물이 빠져나가면, 슬러시 컵에서처럼 지반 위쪽이 흔들리고 내려앉을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지하수 과다 사용으로 지반이 속부터 허물어지는 것, 이것이 지반침하의 근본 원인입니다.
도시 지하 깊은 곳에서 물이 사라지고 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있는 경복궁에는 조선시대 임금들이 마셨다는 우물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우물은 어떨까요? 안타깝게도 바짝 말라 있습니다. 600년 전에는 물이 차고 넘치던 왕궁의 샘이, 이제는 바닥을 드러낸 채 흔적만 남았습니다. 비단 경복궁뿐 아니라 다른 고궁들의 우물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이는 도심 지하수위가 옛날보다 얼마나 급격히 낮아졌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한때 지하 불과 몇 미터 깊이에 풍부하게 고여 있던 물이 이제는 자취를 감춰버린 것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쉽게 볼 수 없을 뿐, 도시 지하 깊은 곳에서는 이렇게 물이 사라지고 있고, 그로 인해 지반을 이루는 흙 구조도 안정감을 잃고 있습니다. 왕실의 우물이 말라붙은 현실은 도시 지반이 처한 위기의 경고음이라 할 만합니다.
빨대로 쪽쪽, 경쟁하듯 퍼내는 지하수
지하수가 줄줄 새나가 지반침하를 일으킨다면 '대체 지하수가 왜 그렇게 빠지는가?' 하는 의문이 남습니다. 이를 이해하기 쉽게 두 아이의 빨대 싸움에 비유해 봅시다. 하나의 컵에 든 주스를 두 아이가 각자 빨대로 마신다고 가정해 보세요. 남은 마지막 한 모금까지 마시겠다고 서로 세게 빨아들일수록 주스는 더 빨리 바닥을 드러내겠지요.
도시의 지하수가 딱 그 꼴입니다. 한정된 지하수를 여러 곳에서 앞다투어 퍼올리면, 누구 하나 양보하지 않고 끝까지 끌어쓰는 동안 지하수는 순식간에 고갈되고 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