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등장하는 SBS 사극 <귀궁>에서는 안경이라는 물건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무녀이자 안경 기술자인 여리(김지연 분)가 드라마의 주무대 중 하나인 대궐로 들어가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왕의 총애를 받는 신하이자 여리의 첫사랑인 윤갑(육성재 분)이 임금의 안경을 만들어달라며 여리를 궁으로 데려간 결과다.
시력 나쁜 왕이 찾은 물건
임금인 이정(김지훈 분)은 시력이 나빠서 안경 쓴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여리는 자신이 임금을 위한 안경을 만들게 될 줄 알고 궁에 들어갔지만, 궁에서 막상 맞닥트린 상황은 그것과 달랐다. 왕족들의 몸에 빙의된 요괴들을 상대하는 일과 부닥친다.
이수광은 스물아홉 살 때 발발한 이 전쟁을 계기로 조선에서 유명해진 명나라 사람과 일본 사람이 안경을 착용한 이야기를 <지봉유설>에 담았다. 그는 1563년에 왔다가 1629년에 떠났으므로 1592년에 발발한 임진왜란을 생생히 겪은 세대다.
51세 때인 1614년에 <지봉유설>을 편찬한 실학자 이수광은 명종 임금 때인 1563년에 태어나 인조 임금 때인 1629년에 운명했다.
<지봉유설> 제19권에서 이수광은 "안경이란 것은 나이 든 사람이 책을 읽으면 작은 글자가 커지게 만든다"는 말이 소설류 서적에 나온다면서 "근년에 들어보니 천장(天將) 심유경과 왜승 현소는 모두 노인인데 안경을 써서 작은 책과 문자를 읽는다고 한다"는 말을 한 뒤 "이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보지 못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일본군과의 휴전협상을 주도한 명나라 장군 심유경이 '명장'으로 표기되지 않고 '천장'으로 표기된 건 이 시대 선비들이 중국과의 사대관계 때문에 명나라를 '하늘의 나라'로 대했기 때문이다. 명나라 장군 심유경과 일본 승려 겐소는 임진왜란 당시 50대 중후반이었다. 이 두 사람이 안경을 쓴 모습이 조선 사람들에게 인상적으로 비쳤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