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가는 집 뒤편 숲으로 이어지는 공원에는 작은 놀이터가 있다. 얼마 전 나는 그곳에서 20개월이 채 안 된 쌍둥이를 둔 한국엄마를 우연히 만났다. 우리는 놀이터에 앉아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며 독일 살이와 육아에 대해 이야기 하였다. 쌍둥이 엄마의 요새 고민은 둘이 너무 싸운다는 거다. 오전에는 두 아이가 근처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놀이그룹(play group)에 있지만, 오후에는 혼자 두 아이를 돌봐야 하니 AI에게 물어보면서 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하였다. 독일의 긴 겨울이 끝나고 이제 햇볕이 따뜻해져서 아이들 데리고 놀러 나왔다며 인터넷의 넘치는 육아정보와 지식 중 어떤 것을 따라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나는 한국의 교사, 부모들이 참여하는 아동 인권교육에서 들었던 질문을 이곳 머나 먼 독일 땅에서 또 접하게 되었다.
"18개월 쌍둥이를 키우는 엄마입니다. 아이들이 서로 때리는 걸 어떻게 훈육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싸울 때도 때리고, 기분 좋아도 때리고, 사과하라고 하면 '미안해요' 하고 또 때려요. 단호하게 하지 말라고 해도 다시 가서 때려요. 도대체 어떻게 훈육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이들이 서로 싸울 때, 어떻게 훈육하고 지도할 것인가하는 질문은, 아동인권 교육을 마친 후 부모들이 자주 묻는 질문 중 하나다. 왜냐하면 과거에 아이들을 훈육하고 지도할 때 등장하던 '사랑의 매'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른이 힘을 사용해서 강제로 아이 싸움을 말리거나 중지시키려 하는 경우, 아동학대 범죄가 될 수 있다. 반면, 아이들의 뜻대로 내버려 두는 것도 아이에게 가르쳐야 할 것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교육적) 방임(放任)이 될 수 있다. 부모의 딜레마는 이 지점이다. 부모가 개입하자니 신체학대가 될 것 같고, 그렇다고 놔두자니 방임이라는 점이다.
아동인권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누가 이 상황에서 괴로운가'부터 생각해봐야 한다. 싸우는 아이들인가? 아니면 그것을 지켜보는 어른인가? 차분히 생각해보면, (아이들이 문제인 줄 알고 아이들을 고치려 들었지만) 싸우는 아이들 곁에 있는 어른의 곤혹스러움이 더 크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우리는 인권의 원칙에 따라, 부모가 자녀를 존중하면서도 실천 가능한 방식으로 안내하는 방법을 시도해 봐야 한다.
부모는 아이들끼리 "때리는 건 무조건 나쁜 행동"이라고 단정짓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아동의 입장에서 갈등과 싸움은 성장을 향한 자연스러운 시도이자 표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몸을 부딪치며 자신의 신체에 대해 알고, 타인과의 경계를 탐색하는 중이다. 몸싸움은 아직 언어가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아이가 의사를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게다가 18개월은 아이가 '내가 할래!'라는 의지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시기다. 쌍둥이처럼 늘 함께 지내는 존재가 곁에 있다면, 서로의 경계를 시험하고, 감정을 표현하며, 몸으로 부딪치며 배우게 된다.
아이 행동을 '문제'삼기보다, 약자 보호를 먼저 가르치자
어떤 상황과 사건이 있을 때 아이 입장에서, 아이를 중심으로 재해석하는 게 필요하다. 문제는 싸우는 아이들이 아니라, 울음과 다툼을 감당해야 하는 어른의 어려움일 수 있다. 예로, 아이가 자라서 '폭력적 성격이 되면 어쩌나', 이대로 두었다가 '남들이 버릇없는 아이라고 흉보면 어쩌나'라고 걱정한다. 주변이나 이웃을 의식하고 눈치를 보는 것은 부모를 긴장하게 만든다.
아이들 간 다툼이 있을 때 인권의 기본 원칙을 습득케 하는 게 중요하다. 일상의 작은 갈등이 있을 때부터 "지금 이 상황에서 누가 가장 약한 사람 같애?"라고 물어본다. 그리고 "우리 집에서는 가장 약한 사람부터 보호할 거야"라고 약속한다. '약자보호의 원칙'에 대해 아이들에게 알리고 그 원칙을 기준점으로 잡고 행동한다. 구체적인 실천방법을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