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서글픈 일인데 축제 분위기 같아요! 서로 잘 될 거라 믿어서 그런 것 같아요!"
- 나아무개씨(여·20·서울 은평구)
국회 탄핵안 가결로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첫 주말, 시민들은 서울 종로구 광화문 앞에 아이돌 응원봉을 들고 모여 "윤석열 체포", "윤석열 파면", "윤석열 퇴진"을 외쳤다. 동십자각에서부터 경복궁 광화문 앞을 지나 정부서울청사 쪽 서십자각 터에 이르는 도로가 밝은 표정을 한 시민들로 가득 찼다. 하얗게 눈 덮인 북악산과 인왕산 아래로 형형색색 응원봉 불빛이 로제의 <아파트> 같은 케이팝에 맞춰 들썩들썩 춤을 췄다.
21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선 세종문화회관 앞을 기준으로 남쪽엔 탄핵 반대 집회, 북쪽엔 탄핵 찬성 집회가 각각 열렸다. 두 집회는 여러모로 대조적이었다.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 대부분이 70대 이상이었다면, 응원봉 집회의 주축은 이날도 20대였다. 응원봉 집회에선 '내신 망한 고딩 연합' 같은 깃발을 든 앳된 학생들을 쉽게 마주칠 수 있었다. 탄핵 반대 집회가 "죽여", "처형" 같은 폭력적인 말이 난무하고 부정선거 음모를 퍼뜨리는 극우 집회였다면, 응원봉 집회는 '저들에겐 총이, 우리에겐 빛이' 같은 시가 피켓으로 들리고, '생명 안전 사회로' 같은 구호가 자리한 평화로운 축제였다.
극우 집회가 오로지 태극기와 성조기 일색이었다면, 응원봉의 색깔은 하양·보라·핑크·빨강·노랑·파랑처럼 모인 시민들만큼이나 다양했다. 극우 집회에 펄럭인 깃발들이 'OO부대 구국 동지회' 같은 낡은 것들이었다면, 응원봉 집회의 깃발들은 '왜요? 제가 덕질하다 뛰어나온 사람처럼 보이나요?', '산책은 핑계고', '밟으면 꿈틀하는 대학생들', '민주주의 지키는 성소수자', '미디어 중독자 연합', '민주 묘~총', '전국 야근하는 디자이너 연합', '잉어빵은 속 확인' 같이 종잡을 수 없이 다채로운 것들이었다.
극우 집회에선 전광훈 목사가 연설을 하는 내내 호전적인 북소리가 둥둥 울리고 하나같이 목을 긁는 인위적인 고함 소리가 귀를 괴롭혔다면, 응원봉 집회는 젊은 사람들이 생목소리로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소원을 말해봐>, 에스파의 <위플래시>, 윤수일의 <아파트>, 김수철의 <젊은 그대>, 거북이의 <빙고(아싸)>, 김현정의 <멍>, 김연자의 <아모르 파티> 같은 노래를 부르며 행진했다. 거리를 지나치다 이 광경을 마주한 외국인들은 "믿을 수 없다"며 웃고 사진을 찍고, 음악에 맞춰 함께 몸을 흔들며 환호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