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피었다. 이때가 되면 하얀 포말 같은, 달콤한 설기 같은, 때론 첫사랑의 두근거림 같은, 그래서 그 순백의 순결을 지키고 떠난 여인을 추억하듯 묘한 감정에 휩쓸린다. 그 애틋한 순정은 시간을 처음 마주한 갓난아이처럼 무색무취다.
벚꽃의 아름다움은 흐드러지게 나무를 뒤덮었을 때보다 꽃비처럼 사방으로 흩어질 때의 아련함에 있다. 이는 소생과 소멸의 극단적인 아름다움이다. 짧은 기간 동안 화려하게 세상을 미혹시키지만, 그 뒤에 찾아오는 쓸쓸함은 인생의 무상함을 닮았다. 벚꽃이 피고 지는 메시지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즐기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벚꽃은 자태를 뽐낼 때 채근해서 봐야 한다. 화들짝 피었다가, 화들짝 사라지기 때문이다. 찰나의 미학이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비극의 정점이기도 하다. 한 잎, 한 잎이 모여 생명의 비장미와 극치미를 절정까지 끌어올렸다가 한순간에 불꽃처럼 꺼지는 모습은 극단적이다. 결국 꽃의 시작은 끝을 향한 몸부림인 것이다.
온몸의 진액이 광합성을 뚫고 마르고 닳아 색깔마저 새하얀 분홍빛. 일주일가량의 짧은 여정 속에서 순백과 낙화의 정경을 담아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진창에 빠진 떨기는 밟히고 짓이겨지면서 참담한 최후를 맞게 되는데, 이는 곧 봄의 서막이다.
벚꽃이 후드득 일시에 떨어지는 건 개별성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다 함께 피었다가 한꺼번에 진다. 찬란한 주검이다. 그 주검 끝에는 장렬한 소진을 견딘 잎새들이 푸르게 얼굴을 내민다.
꽃이 먼저 세상 밖으로 나오고, 잎이 나중에 피는 건 선화후엽(先花後葉)인 까닭이다. 이는 수분(受粉)을 유리하게 하기 위해서다. 잎이 무성하면 꽃이 가려지거나 곤충 접근이 어려워져서 수분율이 떨어진다. 또 효율적인 에너지 사용을 통한 생존 전략이기도 하다. 겨우내 저장해둔 에너지를 가장 먼저 꽃 피우는 데 집중해 번식을 먼저 마치려는 전략인 것이다. 그리하여 벚꽃은 잎을 위해 잠시 잠깐 머무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의 대표주자다.
사쿠라 같은 정치
윤석열 대통령이 파면됐다. 2017년 박근혜 대통령에 이어 불과 8년 만이다. 열흘 붉은 꽃 없다 했거늘 그야말로 화무십일홍이다. 두 사람 모두 헌법재판소 재판관 전원일치로 탄핵소추안이 인용됐다. 한 사람은 벚꽃이 채비도 하지 않은 3월 10일, 한 사람은 벚꽃이 개화한 4월 4일에 벚꽃엔딩을 맞았다. 대통령직을 1~2년 남겨놓고 후드득 낙화했다.